마을의 옛 이름은 '벌말'이다. 들판이 넑다고 하여 붙여졌다. 예로부터 벌말은 기름지고 넓은 벌판에 자리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지명이었다. 이름만으로도 넉넉함이 전해지니 벌말은 어느 지방에서든 부러움을 샀다. 게다가 금산 평촌마을엔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선물처럼 보태어졌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 무주를 거쳐 평촌마을을 품에 안 듯 감으며 물굽이로 돌아다간다. 강변을 따라 난 마을 둘레길이 금강둥그레길이다. 물굽이 귀퉁이의 아담한 섬을 둥그레산이라 부르는데 길도 그 이름에서 따왔다. 마을에 접어들면 거북 모양의 바위가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 뒤로 거북이 등짝 같은 둔덕에 세워진 사당이 눈길을 잡아끈다. 조선 초기 문신 눌재 양성지를 기려 세운사당이다. 바로 구암사다. 그의 행장을 담은 커다란 비가 사당의 문지기처럼 당당해 보인다.
평촌마을은 남원양씨와 해평길씨가 주요 성씨를 이루고 있다. 남원양씨는 눙재 양성지의 후손들이고, 해평길씨는 야은 길재의 후손들이다. 와말과 아랫말은 대부분 양씨이고 도랫말은 양씨와 길씨가 섞여 있다.
사당을 기웃거리고 나오면 백 보도 못 가서 발이 절로 멈춘다. 거인처럼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 하나는 팽나무고 하나는 느티나무인데, 수령이 둘다 족히 500년 이상을 짐작케 한다. 이 나무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을의 역사를 실감한다. 두 나무 사이에 곰보처럼 성혈이 군데군데 난 기자바위에서의 태고의 신비가 묻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팽나무와 느티나무와 기자바위는 옛날부터 마을의 수호신이다.
거북바위에서 시작되는 금강둥그레길. 강변에 이르게 되면 저절로 뒷짐을 지게 된다. 어느새 금강의 느린 유속을 따라 느긋하게 걷고 있다.
마을명 : 충남 금산군 부리면 평촌마을
농바우는 강 건너 어재리에 있다. 깎아놓은 듯이 네모반듯해 생긴 대로 농바우라 불리고 있었다.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옛날에 용맹스런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가 장군의 갑옷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었단다. 남편의 안위보다 전리품에 혈안이 되어 싸움질이라니! 장군은 화가 나 갑옷을 장롱에다 집어넣고 아무도 꺼내지 못하게 뒤집어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못 건드리게 산에 던져놓았는데 그게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농바우끄시기는 가뭄이 심할 때 이 농바우에다 두껍게 꼰 새끼줄을 걸어 날궂이를 하는 것이다. 독특하게 여인들만 참여하는 기우제다. 남자는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날궂이가 심할 때는 여인들이 옷을 다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채 웅덩이에서 서로 껴안고 뒹굴며 장난쳤다고 한다. 이 요상한 꼴을 더는 못 보고 하늘이 노해 비를 뿌린다고 믿었던 것이다. 지금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기우제가 얼마나 잘 통했는지 금산인삼축제 때 농바우끄시기 공연을 하다 도중에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뒤로 농바우끄시기 공연은 축제 때마다 맨 마지막 행사로 밀렸다. 뜻하지 않게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나은 순서다.
실제로 농바우에서 공연되는 농바우끄시기는 장관을 연출한다. 자연이 마련한 거대한 무대 속으로 100여 명의 아낙들이 흥겨운 노래와 바가지나 악기를 두드리며 들어설 때의 장엄함은 웅장한 희랍의 제의 못지않다. 농바우를 끄시기 전에 집집마다 비를 기원하는 사전 의식이 있다.
물병매기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비 오는 모양을 가상으로 연출해보는 것이다.
원새끼를 꼬아 만든 새끼줄을 대문에 걸쳐 걸어놓고 거기에 물병을 거꾸로 달아둔다. 물병 주둥이에 솔가지를 꽂아두면 물이 가지를 타고 뚝뚝 떨어져내리는데 이게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비가 올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농바우를 끄시기로 결정한다. 개인의 힘으로 안된다면 모두 나서 더 큰 힘을 모아보는 것이다.
집집마다 다니며 짚단이나 왜물대호밀을 걷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둘러앉아 밤늦도록 두툼한 동아줄을 만드는데, 다음날 이 동아줄을 농바우에 걸어맨다. 농바우 안에서 돼지머리 놓고 기우제를 먼저 지내고 나면 소리꾼이 '농바우 끄시세!' 소리치는 걸 신호로 동아줄을 당기고, 춤을 추고, 풍물을 치고, 날궂이를 한다. 날궂이는, 여자가 미친 짓을 해야 비가 내린다는 속설처럼 아주 요란하고 괴상망측하기 일쑤다. 벌거벗거나, 갯여울에 들어가 고쟁이만 입고 물장난을 치거나, 물속에 오줌을 누기도 한다. 물이 더러워져야 하늘에서 비가 내릴 거라고 믿은 탓이다. 한해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비만 온다면 무슨 짓을 못할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물페기농요는 펑촌마을에는 홍수 때마다 물에 잠겨 1년에 두어 번은 물 퍼내는 게일이라 물페기라고 불렀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물페기농요의 발생지다. 평촌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요의 공연은 활발하다. 그들에겐 농요가 공연이자 생활이며 일이고 노래다. 공연을 앞두고는 한 달 넘게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모를 심고모 심는 소리김을 매고재벌매기 논두렁을 단단히 밟고두렁밟기추수하여 방아를 찧는방아소리농사의 과정에서 다함께 불렀던 노래가 물페기농요다. 예로부터 농사는 공동체의 협동이 아니면 어려웠다. 다함께 일하는 건 불가피한 미덕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게 하려고 일찍이 터득했던 노래가 농요였다. 입에서 입으로 농요를 통해 농사일에 담긴 의미와 체계를 전수하고자 했던 평촌마을 사람들의 지혜는 이제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래서 물페기농요의 구성을 알아가다 보면 저절로 산업의 농사가 아니라 삶의 농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두더지가 모내기한 논두렁을 뚫지 못하게 두렁밟기를 한다. 김을 매며 부르는 노래는 '얼카산이야' 로 두렁고치기다. 두 벌 논을 맬 때 부르는 재벌매기가 끝나면 추수해서 방아 찧으며 부르는 방아소리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이를 가려 소에 태워 도는 장원놀이를 한다. 금강민속축제 때 물페기농요 공연 두레가 끝나면 농부들은 마을 입구에 모여 먼저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모를 심으며 부르는 소리인 모 심는 소리가 끝나면 쥐나 두더지가 모내기한 논두렁을 뚫지 못하게 두렁밟기를 한다. 김을 매며 부르는 노래는 '얼카산이야' 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논매기를 하고 두렁이 무너졌을 때의 상황을 재현하며 부르는 노래가 두렁고치기다. 두 벌 논을 맬 때 부르는 재벌매기가 끝나면 추수해서 방아 찧으며 부르는 방아소리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이를 가려 소에 태워 도는 장원놀이를 한다.